- New Yorker 에서 저자 인터뷰를 읽다가 흥미가 생겨서 위키백과에 소개된 시놉시스를 읽고 결국 kindle 로 전체를 읽었다.

- 국내에 아직 번역이 되지 않았으니 간단하게 내용을 요약해 보겠다. 내용 전체에 대한 스포일러니 읽으실 분은 뒤로 가세요.

- 소설 시작부터 인도에서 폭염으로 2천만명 이상이 사망한다. 이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는데, 결코 무리한 설정이 아니라는게 더 충격이다. 기온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온을 가리키는 건구온도와 수증기가 증발하는 표면의 온도를 가리키는 습구온도로 나뉘는데, 습구온도가 35도를 넘으면 인간은 체열을 발산할 수가 없어서 죽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구 온난화로 인해 습구온도가 35도 이상으로 올라가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지금은 2~3시간 정도만 지속되고 말지만 작중에 묘사된 사건처럼 냉방 시설과 전력 공급이 충분하지 않고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서 24시간 이상 그 수준의 폭염이 온다면 천만명 단위의 사망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 폭염에서 살아남았지만 평생 치유되지 않는 PTSD를 가지게 된 남자 프랭크 메이가 이 소설의 두번째 주인공이다.

- 파리 협정의 결과물로 아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미래 세대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래부> 가 만들어진다. 아일랜드 출신 미래부 장관 메리 머피는 탄소 배출을 적극적으로 막기 위해 전 세계의 중앙은행을 설득해서 <탄소 코인Carbon coin> 을 만들고, 해수면을 수 미터 높일 만큼의 탄소 연료를 캐지 않은 채로 가지고 있는 대가로 자원 부국들에게 탄소 코인을 지급한다. 또 지속 가능한 농업으로 표토에 탄소 고정을 하는 개개인에게도 탄소 고정량을 측정한 후 탄소 코인을 지급한다. 어차피 양적 완화를 할거면 지구를 살리기 위해 양적 완화를 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 지구를 구하기 위해 평화로운 방법만 쓰는 건 아니다. 폭염으로 수천만명이 사망한 인도인들은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라비아해 상공에 햇빛을 차단하는 이산화황 입자를 살포하고, 인도 출신 환경 테러리스트 집단인 <칼리의 아이들> 과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여러 무장 집단은 전 세계의 석유 석탄 재벌들을 암살하고, 트롤 어선을 침몰시키고, 화석 연료로 날아다니는 여객기 전체를 드론으로 공격해서 추락시키고, 러시아산 극초음미사일로 디젤 컨테이너선을 침몰시킨다. 이 극초음미사일 때문에 어떤 표적도 안전할 수 없게 되고, 전면전이 불가능해진다. 가장 흥미로운 건 드론을 이용해서 지구상 방목되는 소에게 무작위로 광우병 프리온을 주사하는 장면이었다.

- 남극과 그린란드에서는 과학자들이 빙하를 시추해서 빙하 아래에 고인 녹은 물을 퍼올린다. 이렇게 해서 빙하가 바다로 흘러가는 속도를 낮추고 해수면이 상승하는 시간을 번다.

- 이 와중에도 선진국의 대도시에는 10년 동안 비가 오지 않고, 로스 앤젤레스에는 집중 호우가 내려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는 등 크고 작은 자연 재해가 닥친다.

- 스페인 바스크 몬드라곤, 인도 케랄라 등에서 실현된 진보적 지역 경제-사회 공동체가 전 세계로 퍼진다. 기업 내 급여 격차를 최대 10배에서 20배로 제한하는 조치가 시행된다. 작가는 미 해군 대장의 급여가 사병의 10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 이상의 급여가 실질적으로 필요하냐고 묻는다.

- 주로 저위도 지역에서 온 난민들에게 2차 대전 직후 난민들에게 주어졌던 것과 유사한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특수 여권이 주어진다.

- 그 와중에 겸사겸사 탈중앙화 p2p SNS 같은 것도 만들고 금융 거래도 가능하게 해서 조세 도피처를 망하게 만든다.

- 미래부가 위치한 스위스 취리히와 알프스 산이 얼마나 아름답고 그곳의 겨울 날씨가 얼마나 험악한지에 대해 만연체로 이야기하는데 책의 약 1/7 이상이 소모된다.

 

- 소설의 각 챕터는 각각 다른 화자의 말을 전한다. 메리 머피와 그녀의 미래부 관료들, 그리고 프랭크 메이를 제외한 대부분은 무명의 등장 인물 또는 전지적 작가이다. 역사, 광자, 탄소 원자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전개하기도 한다.

-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이 책 속의 인류는 ““매 순간 가장 최고의 정치적 결단”을 내리며, 그 모습이 오히려 절망적인 현실을 더욱 상기시킨다고 지적한다. 꽤나 동감하는 바이다.

 

- 작가는 끝까지 원자력을 언급하지 않는다. 현재 기술 기반으로 전기 기반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실질적으로 유일한 방법이 원자력이라는 걸 생각하면 꽤나 비겁한 선택이다. 작가의 개인적 신념이 반영된 것일까? 아니면 독자층을 고려한 것일까? 인도가 탈탄소 선두에 선다면 상대적으로 안전한 토륨 원자력 발전을 언급해야 하지 않았을까? 핵융합은 2050년까지도 도달 불가능한 목표인 것일까?

- 유사-공산주의가 세계를 정복해서 기후 위기를 이겨내려 노력하는 이 새빨간 소설을 미국 보수 우파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지만 유의미한 결과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진보적인 영미 미디어에서는 엄청난 각광을 받았는데 한국 언론에서는 기사 하나 정도만 검색된다.

 

- 주로 출퇴근길에 영어로 읽는데 대충 한달이 걸렸다. 어쩔 수 없이 정독을 하게 되고 생각할 거리도 많아진 것 같다. 그 시간에 한국어 책을 읽었으면 열 권도 넘게 읽었겠다만 읽을만한 책 열 권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 어쨌든 2022년 1분기 최고의 책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제 2분기에 SFnal 이 나오기를 기다려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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