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위터에서 역자를 팔로우하면서 기다리던 책이다. 전혀 몰랐던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
서문부터 페르낭 브로델 이야기가 나오는데, 20대 초에 억지로 읽었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동남아시아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좌절의 순간이라 할 1511년 믈라카 함락 당시에도, 도시를 수비하던 말레이인들은 처음에는 이 사건을 같은 견지에서 보았다. "믈라카 왕은 (...) 도시를 떠나 말레이 상인과 신하와 각료들을 데리고 하루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곳으로 피했다. (...) 아폰수 알부케르크가 도시를 약탈하고 약탈품을 배에 실으면 돌아갈 줄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전쟁의 목적은 가능한 한 노동력을 늘리는 것이지 피 튀기는 전투에 노동력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었다.
서구식 전쟁의 훨씬 많은 사상자 비율에 익숙했던 유럽인, 튀르크인, 페르시아인들은 한 명이라도 사상자가 나면 전투를 계속하기를 주저하는 동남아시아인의 태도에 놀랐다. 아베 드 슈아지는 시암인, 버마인, 라오인이 전쟁을 "천사처럼" 치른다고 생각했다. ... 전장의 잔인무도함에 익숙했던 것이야말로 그토록 소수였던 유럽인이 수적으로 훨씬 우월한 동남아시아 병력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동남아시아는 기후가 온난하고 주식인 쌀, 생선, 과일을 구하기가 전 세계 어느 곳보다 쉬웠다. 그 덕분에 생계를 유지하려고 분투하지 않아도 되는 천혜의 이점을 누렸다. 그러므로 같은 시기를 살았던 인류보다 오늘날 여가로 분류하는 활동에 쓸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았을 것이다. 동남아시아인은 유럽인들이 보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여가 시간이 많고, 저녁에는 노래하고 먹고 마시고 놀이를 하며 즐겁게 어울렸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매일 해야 하는 노동과 대립되는 자유 시간으로서의 여가라는 개념은 산업사회가 낳은 근대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그 시절 동남아시아인에게 축제, 의례, 잔치에 참여하는 것은 생산활동만큼 중요한 사회적 책무였다.
강력한 통치자들이 많은 수의 여성, 그중 일부는 경호원 역할을 하는 여성에게 둘려싸여 있는 일이 흔했다는 점이다... 이런 양상은 독재적인 통치자들이 주변의 남자를 믿지 못하는 일종의 불신에서 비롯했다. 적어도 도서부 동남아시아에서는 남자라면 누구든지 자신을 무시하면 들고 다니던 무기로 즉시 덤비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런 성향 때문에 그 시기의 역사를 살펴보면 비극적 사례가 수없이 많았다.
저자가 동남아시아라는 지역 전체에 대해 품은 깊은 애정이 책 전체에 걸쳐 느껴진다. 반면 이에 따라 공정성을 상실한 예도 보이는데,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노예제가 매우 흔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잔혹성을 애써 축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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