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시도해 봐야 하는 방법은 

1. Flutter clean

2. VS Code 껐다가 켜기

3. ios/Podfile.lock, ios/Pods 지우기

이다. 이렇게 3개를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 아래 명령어를 입력해 보자.

$ arch -x86_64 sudo gem install cocoapods -n /usr/local/bin
$ sudo gem install cocoapods -n /usr/local/bin
$ sudo arch -x86_64 gem install ffi
$ cd ios; arch -x86_64 pod install --repo-update

 

cat components.txt | while read line; do echo $line; grep -o -r $line ./src | wc -l; done

grep -o : 결과가 있는 경우만 나온다.

wc -l : 라인 숫자를 더해서 결과를 알려준다.

폴란드 항공 리뷰를 보면 모두들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연착이 심하다"

하지만 내심 기대도 했다. 왜냐하면 8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6시까지 가기는 싫었기 때문 -.- 

다행(?)히도 9시로 연착이 되어서 조금 널널하게 7시까지 공항으로 갔다. 



치킨과 소고기 중에 소고기를 골랐는데 미트로프가 나왔다. 오히려 뻑뻑한 소고기보다 이게 낫지 싶기도 했음.

폴란드 항공은 간식 인심이 매우 넉넉하다. 비행기 가장 뒤 갤리에 가면 이렇게 과자를 쌓아두고 아무나 가져갈 수 있음. 맥주도 준다. 참고로 저 맥주 맛없다. 하이트 맛이 난다.



비행기 타면서 간식 달라고 하면 꿀땅콩이나 아몬드 한두개 주는데 어찌 이리 인심이 후한가! 역시 땅이 널찍하니 마음까지 널찍하구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비싼 꿀땅콩이 아니라 옥수수 튀밥이라서 아무렇게나 뿌리는 거였다. 그 중학교 매점에서 파는 밭두렁이랑 똑같은 맛이다.


러시아 전쟁 때문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하늘을 지나가지 못하니 이렇게 중국-카자흐스탄-조지아-터키를 거친 뒤 루마니아에서 드리프트를 꺾고 폴란드까지 간다. 평소보다 거의 3시간 더 걸린 듯. 이코노미 타는거 너무 힘들어서 낮비행기로 탔으니 망정이지 밤비행기였으면 자리에 앉은 그대로 쇼크 오지 않았을까 싶다.


조지아 하늘을 지나가면서 카프카즈 산맥의 위용을 감상할 수 있었다. 러시아 속담에 왕이 미치면 카프카즈로 전쟁하러 간다는데 정말 그런 속담이 나올 법 한다. 코로나 직전에 조지아가 가장 인기있는 여행지로 뜨고 있었는데, 여긴 언제쯤 가보게 될런지 모르겠네.


대충 헝가리 하늘에서 두번째 식사가 나왔다. 이번에도 소고기가 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아침으로 치킨을 골랐을텐데.


바르샤바 공항에서 대충 한시간 정도 환승 시간이 있었다. 이 순간을 위해! PP카드를 만들었다. 하지만 폴란드 음식은 절망적이었는데.. 동유럽식 물만두에 딸기잼을 넣다니... 실망을 가득 안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간다.


파리에 도착해서 평소처럼 로이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는데 경기장 앞에 어마어마한 인파가 있다. 오늘 챔피언스 리그 결승이 파리에서 열린다고 보고 오라고 했던 기억이 이제 난다.

친구 집에 도착하니 이 집 고양이 보보가 충격을 받았다. 주인은 없고 갑자기 이상한 사람이 나타나고... 그러다가 흥미를 가지고 모든 짐을 꼼꼼하게 검사하기 시작함.


도합 15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와서 더 이상은 움직이기가 싫었지만 그래도 파리에 왔으니 뭐라도 먹자 하고 거리로 다시 나왔다. 원래는 타파스 3종에 9유로에 준다는 메뉴를 시키려고 했는데 오늘의 메뉴가 맛있다고 해서 시켰는데 그냥 식물성 기름에 지진 유럽식 스테이크였다 ㅋㅋㅋ 맛은... 감자와 저 소스가 맛있었다. 어쨌거나 오늘 하루에만 소고기를 세 번이나 먹었다. 


이렇게 첫날 끝!

<Happy SF>, <판타스틱>, <미래경> … SF 전문 정기간행물을 만들기 위한 그간의 노력은 항상 실패해 왔다. 이런저런 해석이 붙지만 진짜 이유는 단순히 시장의 물리적 크기가 작던 것 아닐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잡지는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SF 팬이라 해도 쏟아지는 소설과 앤솔러지를 다 읽을 수 없으니, 누군가 읽고 소개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실려 있는 중단편 중 딱히 흥미로운 소설은 없었지만 서평이 넉넉히 실린 것이 가장 반가웠다.

오랜만에 깔깔대며 읽은 책이다.

 

큐비즘 -> 추상 -> 액션 페인팅 -> 팝 아트 -> 개념 미술... 까지 발전한 대충 이 시점에서 현대미술이 '보는 것'을 넘어서서  '읽는 것', 원제 그대로 Painted Word 가 되었다는 주장을 하면서 미술가들과 그들의 후원자, 그리고 델포이의 신탁을 해석하듯 미술을 해석해내서 '말씀' 으로 창조해 내는 비평가들을 비평하는 책이다. 

 

나는 다른 데에서는 몰라도 최소한 미술에 있어서는 속담대로 '보는 것이 곧 아는 것' 이라고 믿어 왔다. ... 그러나 드디어 나는 깨달았다. 이 멍청이야, '보는 것이 아는 것' 이 아니고 '아는 것이 곧 보는 것' 이야! 왜냐하면 현대미술은 완전히 문예적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그림이나 다른 미술 작품들은 오직 문의를 예시하기 위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보헤미안으로서 그들은 상류사회의 살롱을 떠났지만 상류사회의 세계마저 떠난 것은 아니었다. 부르주아지로부터 떠난다면 화구를 챙기고 타히티 섬이나 아니면 최소한 (고갱의 첫 기착지였던) 브르타뉴라도 떠나야 한다. 그러나 고갱 이외에 누가 브르타뉴만큼이라도 갔는가? 아무도 없다. 나머지는 모두 몽마르트르나 몽파르나스 언덕 이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무슨 얘긴가? 샹젤리제로부터 이 마일 이상은 안 벗어났다는 얘기인 것이다. 미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신시내티에서도 필요한 윈저 뉴튼 물감을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화가들은 계속 뉴욕으로 몰려들고 있다. 
두 사람 (MoMA의 큐레이터) 이 53번가 미술관을 나서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 순간부터 아랫동네 '보호(BOHO)의 마을'의 레이더망은 그들의 출격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그들이 온다!' 그러면 접신술가의 우주 맥동처럼 로우어 맨해튼 일대에 심장이 뛰는 소리가 합창이 되어 일어났다. 
"나를 뽑아 줘요, 나를 뽑아 줘요. 나를 뽑아 줘요...." 아, 빌어먹을 윗동네!
마음속으로 알고 있는 것과 입으로 말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다만 누가 묻거든 절대로 그렇게 털어놓으면 안 돼!
오늘날 아방가르드 화가가 그의 후원자에게 줄 수 있는 독특한 현대적인 보상이 있다. 후원자는 배우자인 화가나 마찬가지로 자기도 부르주아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며, 자기가 중산층 '출신'이긴 하지만 더이상 그 세계 '안에' 있지는 않다는 느낌 ... 자기는 블레셋의 땅을 진군하는 선발부대에 끼인 동료 사병, 아니 최소한 부관이나 명예 게릴라쯤은 된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의 독특한 욕구이고 구원 (돈을 너무 많이 가졌다는 죄악으로부터의) 이며, 뉴욕이든 로마든 밀라노든 구미 전역에 걸쳐 부유한 사람들 가운데서 보이는 아주 일반적인 현상이다. ... 알았어? 난 '저들'과 다르단 말이야. 저 젊은 상공회의소 회원들, 저 금융회사의 회장들, 저 새파란 사장들, 돼지턱에 줄무늬 넥타이를 매고 굴 전문 음식점에서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어, 친구, 만나서 반갑네) 저 돈만 아는 뉴욕의 이교도 재벌들하고는 다르단 말야. 전위미술 작품은 다른 무엇보다도 돈으로부터 맘몬과 몰렉의 체취를 몰아내고 거기에 작업복, 스웨터, 구렛나룻, 그리고 보헤미아의 우아함을 지니는 망토와 월계수의 분위기를 대치해 준다.

 

 

 

- New Yorker 에서 저자 인터뷰를 읽다가 흥미가 생겨서 위키백과에 소개된 시놉시스를 읽고 결국 kindle 로 전체를 읽었다.

- 국내에 아직 번역이 되지 않았으니 간단하게 내용을 요약해 보겠다. 내용 전체에 대한 스포일러니 읽으실 분은 뒤로 가세요.

- 소설 시작부터 인도에서 폭염으로 2천만명 이상이 사망한다. 이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는데, 결코 무리한 설정이 아니라는게 더 충격이다. 기온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온을 가리키는 건구온도와 수증기가 증발하는 표면의 온도를 가리키는 습구온도로 나뉘는데, 습구온도가 35도를 넘으면 인간은 체열을 발산할 수가 없어서 죽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구 온난화로 인해 습구온도가 35도 이상으로 올라가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지금은 2~3시간 정도만 지속되고 말지만 작중에 묘사된 사건처럼 냉방 시설과 전력 공급이 충분하지 않고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서 24시간 이상 그 수준의 폭염이 온다면 천만명 단위의 사망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 폭염에서 살아남았지만 평생 치유되지 않는 PTSD를 가지게 된 남자 프랭크 메이가 이 소설의 두번째 주인공이다.

- 파리 협정의 결과물로 아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미래 세대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래부> 가 만들어진다. 아일랜드 출신 미래부 장관 메리 머피는 탄소 배출을 적극적으로 막기 위해 전 세계의 중앙은행을 설득해서 <탄소 코인Carbon coin> 을 만들고, 해수면을 수 미터 높일 만큼의 탄소 연료를 캐지 않은 채로 가지고 있는 대가로 자원 부국들에게 탄소 코인을 지급한다. 또 지속 가능한 농업으로 표토에 탄소 고정을 하는 개개인에게도 탄소 고정량을 측정한 후 탄소 코인을 지급한다. 어차피 양적 완화를 할거면 지구를 살리기 위해 양적 완화를 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 지구를 구하기 위해 평화로운 방법만 쓰는 건 아니다. 폭염으로 수천만명이 사망한 인도인들은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라비아해 상공에 햇빛을 차단하는 이산화황 입자를 살포하고, 인도 출신 환경 테러리스트 집단인 <칼리의 아이들> 과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여러 무장 집단은 전 세계의 석유 석탄 재벌들을 암살하고, 트롤 어선을 침몰시키고, 화석 연료로 날아다니는 여객기 전체를 드론으로 공격해서 추락시키고, 러시아산 극초음미사일로 디젤 컨테이너선을 침몰시킨다. 이 극초음미사일 때문에 어떤 표적도 안전할 수 없게 되고, 전면전이 불가능해진다. 가장 흥미로운 건 드론을 이용해서 지구상 방목되는 소에게 무작위로 광우병 프리온을 주사하는 장면이었다.

- 남극과 그린란드에서는 과학자들이 빙하를 시추해서 빙하 아래에 고인 녹은 물을 퍼올린다. 이렇게 해서 빙하가 바다로 흘러가는 속도를 낮추고 해수면이 상승하는 시간을 번다.

- 이 와중에도 선진국의 대도시에는 10년 동안 비가 오지 않고, 로스 앤젤레스에는 집중 호우가 내려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는 등 크고 작은 자연 재해가 닥친다.

- 스페인 바스크 몬드라곤, 인도 케랄라 등에서 실현된 진보적 지역 경제-사회 공동체가 전 세계로 퍼진다. 기업 내 급여 격차를 최대 10배에서 20배로 제한하는 조치가 시행된다. 작가는 미 해군 대장의 급여가 사병의 10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 이상의 급여가 실질적으로 필요하냐고 묻는다.

- 주로 저위도 지역에서 온 난민들에게 2차 대전 직후 난민들에게 주어졌던 것과 유사한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특수 여권이 주어진다.

- 그 와중에 겸사겸사 탈중앙화 p2p SNS 같은 것도 만들고 금융 거래도 가능하게 해서 조세 도피처를 망하게 만든다.

- 미래부가 위치한 스위스 취리히와 알프스 산이 얼마나 아름답고 그곳의 겨울 날씨가 얼마나 험악한지에 대해 만연체로 이야기하는데 책의 약 1/7 이상이 소모된다.

 

- 소설의 각 챕터는 각각 다른 화자의 말을 전한다. 메리 머피와 그녀의 미래부 관료들, 그리고 프랭크 메이를 제외한 대부분은 무명의 등장 인물 또는 전지적 작가이다. 역사, 광자, 탄소 원자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전개하기도 한다.

-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이 책 속의 인류는 ““매 순간 가장 최고의 정치적 결단”을 내리며, 그 모습이 오히려 절망적인 현실을 더욱 상기시킨다고 지적한다. 꽤나 동감하는 바이다.

 

- 작가는 끝까지 원자력을 언급하지 않는다. 현재 기술 기반으로 전기 기반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실질적으로 유일한 방법이 원자력이라는 걸 생각하면 꽤나 비겁한 선택이다. 작가의 개인적 신념이 반영된 것일까? 아니면 독자층을 고려한 것일까? 인도가 탈탄소 선두에 선다면 상대적으로 안전한 토륨 원자력 발전을 언급해야 하지 않았을까? 핵융합은 2050년까지도 도달 불가능한 목표인 것일까?

- 유사-공산주의가 세계를 정복해서 기후 위기를 이겨내려 노력하는 이 새빨간 소설을 미국 보수 우파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지만 유의미한 결과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진보적인 영미 미디어에서는 엄청난 각광을 받았는데 한국 언론에서는 기사 하나 정도만 검색된다.

 

- 주로 출퇴근길에 영어로 읽는데 대충 한달이 걸렸다. 어쩔 수 없이 정독을 하게 되고 생각할 거리도 많아진 것 같다. 그 시간에 한국어 책을 읽었으면 열 권도 넘게 읽었겠다만 읽을만한 책 열 권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 어쨌든 2022년 1분기 최고의 책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제 2분기에 SFnal 이 나오기를 기다려야겠군.

- 마거릿 애트우드 여사는 <오릭스와 크레이크> 를 쓰고 아직 못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던 듯 하다. 가필의 가필을 이렇게까지 쓸 이유가 있었을까?
- 전작의 주인공들의 사연이 계속 다른 관점을 통해 반복된다.
- (스포일러)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 낸 신인류들이 1부에서는 좀 포스트휴먼답게 묘사되었는데, 2부와 3부에서는 그냥 고귀한 야만인이다. 추상적 사고를 하지 못한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책도 씀. 이 친구들에 비하면 야노마미족이 더 포스트 휴먼에 가깝다.
- <시녀 이야기> 와 <증언들> 에서도 그러더니, 이 책들에서도 애트우드 여사는 복음주의 개신교에 대한 애증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다음의 두 그래프를 보면 신규 확진자 수가 감소세로 돌아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달간 코로나 신규 확진자 추이 - corona-live.com
2022년 1월 18일 이후 현재까지 한국 코로나 확진자 7일 평균값 - Our World in Data

별 다른 이변이 없는 한, 감소세는 지속될 것이며 말 그대로 걸릴 사람이 다 걸린 다음에 코로나는 '종식' 될 것입니다. 문제는, 그때까지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나야 할지, 그리고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코로나에 걸려야 하는지겠죠.

 

코로나19가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기대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른 감기와 인플루엔자에 더불어 코로나19도 우리 곁에 계속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목표를 바꿔 봅시다. 코로나19가 일반 감기와 같은 수준의 확산세가 되려면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나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우선 하루에 몇명이나 감기에 걸리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연도별 감기 환자수와 연령별 감기 환자 수 - 생활 속 질병통계 100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18년에 발간한 <생활 속 질병통계 100선> 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연간 감기 환자 수는 2100만명에서 1900만명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9세 이하 소아 환자의 비율이 가장 많은 것을 볼 때, 시간이 흐를수록 총 감기 환자수가 줄어드는 이유는 소아 인구 수가 줄어드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림잡아 매년 2000만명 정도가 감기에 걸려서 진료를 받는다면, 감기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1.5배 정도인 3000만명 정도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수를 365일로 나누면 매일 약 8.2만명, 즉 전체 인구의 0.16%가 감기에 걸린다는 추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 19에는 조금 더 빡빡한 조건을 적용해서 하루에 확진자 5만명 (전체 인구의 0.1%) 가 나오는 것을 목표로 잡아 봅시다.

corona-live.com

하루 확진자 5만명을 유지하던 때는 2022년 2월 8일부터 2월 14일까지 약 일주일간이었습니다. 이 시점에 7일 확진자 평균치는 약 100만명당 1000명, 그러니까 0.1% 정도였습니다. 7일 확진자 평균치가 가장 높은 날은 3월 17일로, 하루에 전체 인구의 0.78% 가 감염되었습니다. 4월 1일 기준으로 현재 7일 확진자 평균치는 0.59%입니다. 0.1%에서 0.59%까지 오르는 기간은 약 한달 가량이었습니다.  

our world in data

확산세에 비해 감소세가 둔화된 것을 감안할 때, 7일 확진자 평균치가 0.1%까지 줄어들기까지 30일이 걸린다고 한다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코로나에 감염되어야 할까요? 계산의 편의를 위해 기울기 변화를 무시한다면, 4월 2일 현재 확진자 수인 약 25만명이 30일 동안 5만명으로 줄어들 때까지 코로나에 걸리는 사람은 (25만-5만) * 30일 / 2 = 300만명입니다.

저 파란색 삼각형이 코로나에 더 감염되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현재 누적 확진자 수인 1363만명에 300만명을 더하면 1663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33%입니다. 오미크론 이후 역학 조사를 포기하고 다수의 무증상자가 검사를 받지 않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전체 인구의 50% 정도가 오미크론에 감염될 것이라고 해도 무리한 가정은 아닐 것입니다. 저처럼 아직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았다면, 남은 30일 동안 코로나에 걸릴 확률은 8% 정도입니다. 꽤 높은 비율이죠. 

 

물론 저는 역학자가 아니고, 코로나의 치명률이 일반 감기보다는 훨씬 높다는 점, 언제든지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섣부른 낙관론을 펴기에는 아직 이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영국의학저널(BMJ) 에 작년에 게재된 <팬데믹의 끝은 방송되지 않을 것이다> 라는 기사의 결론을 (멋대로 축약해서) 인용하고 싶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팬데믹은 집단 면역을 획득하거나 공식적인 종식 선언을 통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팬데믹의 충격적인 결과를 점차적으로 신경쓰지 않게 되면서 끝나게 됩니다. 팬데믹 종식은 생물학보다는 사회적인 현상으로 봐야 합니다. 정신 건강, 교육에 미치는 영향, 거리두기로 인한 사회적 고립감 등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한 확진자 수치는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알려주는 도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최소한 호흡기 감염으로 발생된 팬데믹은 수치가 내려가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팬데믹은 극적으로 '종식'되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이 새로운 질병에 적응하고 일상이 회복되면서 서서히 사라질 것입니다.

코로나 19 팬데믹은 우리가 뉴스를 끄고 다른 이슈들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할 때 끝날 것입니다. 시작과는 달리, 팬데믹의 끝은 방송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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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0) 2022.03.13
업무 강도는 높지만, 급여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아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간호사와 교사와 같은 직업군에서는 '내가 집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라는 감정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된다... 사람들은 이러한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배척을 피하기 위해 집단의 가치에 순응하고 그것을 내면화하는 노력을 기울이기를 기대할 것이다 - p. 54
페이스북의 투표 독려 메시지를 보거나 투표자의 수를 인지하는 것도 사람들의 투표 행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투표를 했다고 밝힌 친구들의 얼굴을 보았을 때는 영향이 있었다. 투표 가능성이 0.39퍼센트 증가한 것이다... 2010년 선거에서 이러한 개입으로 증가한 전국의 투표수가 34만표에 이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p. 75
뉴스에 대해 더 신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를 더 쉽게 구별했다. 심지어 뉴스 헤드라인이 그들의 이념과 부합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그러한 경우,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의 구별이 더욱 용이했다. 즉, 사람들이 가짜 뉴스에 속는 것은 동기에 기반한 추론 때문이 아니라 추론의 부재 때문이었다. - p. 87
어떤 집단이 우리에게 집단 구성원이 누구이며 집단 소속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명확하게 제시하여 충분히 가깝고 동질적으로 느끼게 해줌과 동시에 우리를 집단 밖의 다른 사람들과 차별되도록 만들어 줄 수 있을 때, 가장 강한 사회적 정체성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 p. 111
일부 방사선사들에게 환자의 영상(몸 내부의 사진)뿐 아니라 그 사람의 겉모습을 찍은 사진을 함께 주었다. 이 간단한 개입을 통해 진단의 정확도를 47퍼센트나 향상시킬 수 있었는데, 이는 겉모습을 찍은 사진에 어떤 정보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환자들이 더 실제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 p. 137
단지 여러분이 다른 사람과 서로 어떻게 비슷한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 간의 인식된 사회적 거리를 줄일 수 있다. - p. 147

 

 

빌리고 나서 보니 십년쯤 전에 <인간 종말 리포트> 로 읽었던 책이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미래를 그려내기 때문에 읽어 나가기가 쉽지 않지만 워낙 글을 잘 써서 결국 끝까지 읽고 말았다.
작가는 북미 문화가 완전히 파탄의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걸 부정하기가 쉬운 것도 아니고..
정치와 국가의 영향력이 완전히 실종되고 다국적 기업들이 모든 걸 지배하며 시위에 참가한 것만으로도 사형을 당하는 미래와 모든 것이 정치화되고 ‘무엇을 혐오하는가’ 가 개인의 정체성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예고하는 미래 중 무엇이 더 나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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