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The Year's Best Science Fiction> 라는 제목으로 출간되는 종합 앤솔러지다. 2003년에 21세기 SF 도서관 이라는 미묘한 이름으로 2001년판이 출간되었고 그 이후로는 아무 소식이 없었는데, 갑자기 작년(2021년) 부터 매년 출간을 하고 있다. (2021년 판에 대한 짧은 리뷰는 여기에 있다) 영미권 SF 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따라 잡는 일이 쉬운게 아닌데, 이렇게 모아 놓은 앤솔러지를 출간해 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부디 이 시도가 계속되기를 바라며 몇 가지 기억에 남는 단편에 대해 짧은 감상을 써 본다.

 

<에어 바디>

영화 그녀Her 의 파키스탄 이민자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흔한 이야기지만, 그 배경 때문에 굉장한 반전이 펼쳐진다. (사실은 반전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반전이다)

 

<알약>

아무리 고도비만이라도 먹기만 하면 완벽한 몸을 가지는 알약이 있다면? 다만 아주 사소한 부작용이 있는데, 약을 먹은 사람 열 명 중 한명은 죽어버린다는 것이다. 이 알약은 판매 허가를 받을 수 있을까? 물론 될 것이다! 2021년에 읽은 단편 중 가장 인상적인 단편이었다. 다만 좋다고 하기는 어려운데, 흥미로운 초반부에 비해 결말 부분의 성애적 접근은 꽤나 통속적이고 한 천번은 읽은 듯한 내용이다.

 

<드론을 두드려 보습을 만들지니>

드론 보고 체게바라가 너 저항군이 되지 않을래? 하는 이야기

 

<GO. NOW. FIX.>

인공지능이 달린 베개가 비행기 사고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아주 행복하고 귀여운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도 계속 나와야 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엘리스테어 레이놀즈의 유머 감각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인간이란 무엇이지?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짓는 것은 무엇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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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꽤나 익숙한 레이코프의 미국 정치 분석이다. 보수는 엄격한 아버지를 국가에 기대하고, 진보는 자애로운 어머니를 기대하고 뭐 그런거.

1996년에 출간된 책인데, 당시 레이코프는 약 25년 뒤 미국이 지금처럼 극단적인 문화 전쟁을 겪으리라는 예상을 했던 것일까?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또는 이 책에서 제시한 프레임 그 자체에 우리가 맞춰진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레이코프 책 중 가장 중요한 <여자와 불, 위험한 것들> (한국어판 제목은 매우 재미없게도 인지의미론 이다. 물론 절판된지 오래이고 알라딘 중고서적에서는 검색도 안 된다) 은 아무도 다시 출간하려 하지 않는 반면 그의 정치 관련 도서는 이렇게 열심히 출판되는게 흥미롭다.

 

다음 두 부분이 유난히 흥미로웠다.

세라노의 작품은 종교에 대한 모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른 작품들은 - 즉 개념 예술이나 양식에 대한 탐구는 - 보수주의 가치 시스템에서는 이해될 수 없는 것들이다. 보수주의자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런 것들이 어리석음이나 방종으로 간주되지 않고 예술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엄한 아버지 도덕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들은 예술이 아니다. 보수주의자들에게 열려있는 유일한 선택은 그런 예술을 문화적 엘리트의 산물이라고 보는, 불법적인 가치관을 가진 나약한 속물들을 해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수주의자들이 예술을 위한 국가지원법을 폐기해버리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국 CIA가 소련과의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도덕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이런 쓰잘데 없는 현대미술을 후원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꽤 아이러니한 분석이다.

 

(중앙 정부를 극단적으로 두려워하는 민병대 류의 보수주의자들에 대해 다루면서) 그런 사람들은 그들의 가정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를 사랑하고, 자기 가정을 한 제도로 믿는 것처럼 정부의 형식을 믿는다. 그들은 자신의 조상들을 존중하듯이 국가의 선조들을 존중한다. 그러나 그들은 가끔 현 정부를 미워하고 두려워하는 부분도 있다. 그것은 그들이 학대하고, 방기하고,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문제를 안고 있는 가정이나 공동체 출신이기 때문일까? 그들은 학대하거나 방기하는 엄격한 아버지 가정 모델을 - 중심모델이든 변형모델이든 간에 - 가진 것일까? 그런 모델은 여러 세대로 이어지며 배워온 것일까? 그것들은 우리의 어떤 제도에서, 군대에서나 경쟁적인 스포츠에서, 학교에서, 혹은 동지들의 모임이나 그 외의 사회조직에서 배우고 전파되는 것일까?

 

참고로 번역의 품질이 그닥 좋지 않다. 전미여성기구National Organization of Woman 을 국립여성기구 로 번역한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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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출판된 SF 를 기억만 떠올리며 목록을 만드는 게 가능한 시절이 있었는데, 이렇게 따라잡지 못할 속도로 한국산 SF 앤솔러지가 계속 나온다니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사실 읽은지 너무 오래되어서 책 소개를 봐도 이산화의 무한루프를 다룬 단편 외에는 특별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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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이제야 읽었단 말이야..? 싶지만 어쨌든 읽었다. 

 

동굴의 비유 등 중요한 내용은 대부분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흥미로운 점은 <향연> 을 읽으면서도 느꼈던 것처럼 당시 그리스인들은 관념의 의인화로서의 신과 인격신 개념을 아주 엄격하게 구분하지는 않던 것 같다. 그러니까 사랑에 대해 논하면서 에로스 신이 어쩌구 저쩌구를 굉장히 진지하게 이야기한다거나.

이걸 이제야 읽었구나 싶은 책 한권 추가.

 

요즘에는 극도로 비참한 콩고 식민지의 실상이 잘 알려져 있어서 본문의 내용이 그리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백인은 모든 면에서 미개한 흑인 원주민보다 우월하고, 그들을 계도하고 있다고 상상해 온 당시 독자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근데 커츠는 그래서 뭘 했다는 거에요 

 
 

꿈꾸는 대로 그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남자와 그를 이용해 명성과 권력을 얻기를 바라는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살기가 힘드니 좀 한가해졌으면 좋겠다- 이런 암시를 불어넣으니 수십년 전에 팬데믹으로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죽어나간 꿈을 꾸고 그게 현실이 되어버리는 식.

 

꿈꾸는 대로 세상을 바꾼다니 이건 장자 이야기잖아! 싶은데 사실 장자 이야기가 맞다. 애초에 책 제목인 <하늘의 물레> 부터가 장자에 나오는 자연의 균형이라는 뜻의 천균(天鈞) 이라는 단어를 '하늘의 물레' 로 오역한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소원을 빌 때는 조심해야 해' 부류의 이야기지만, 전통적 SF 의 트릭도 잘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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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고고학... 이라고 해야 하나? 문명 발달 과정에서 각종 개념과 발명들이 언제쯤 어떤 과정을 통해서 창안되었을지 추측하는 책이다. 

 

내용은 그럭저럭 시간 때우기에 좋은데, 각 발명의 최초 고안자들을 여자와 남자로 애써 나눈 점이 재미있다. '그he' 와 '그녀she' 가 엄격하게 구분되는 언어에서는 어쩔 수 없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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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이후로 읽은 심너울의 SF 장편소설이다. 어디선가 많이 본 이야기들을 잘 조합해서 어디선가 많이 본 이야기를 내놓았는데, 결론 부분이 꽤 마음에 들었다. 

 

- 스포 시작 - 

 

인류 사회를 지배하는 초인이 되어도 총알 한방이면 으악이라는 건 똑같다! 총알을 맞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엄청난 속도로 계산할 수 있지만 총알을 피하는 방법은 없다!

 

- 스포 끝 - 

 

그리고 듀나가 그리기 시작한 한국형 재벌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가 꽤 그럴듯하게 그려진다. 이 소재는 앞으로도 계속 쓰여질 것 같다.

<Happy SF>, <판타스틱>, <미래경> … SF 전문 정기간행물을 만들기 위한 그간의 노력은 항상 실패해 왔다. 이런저런 해석이 붙지만 진짜 이유는 단순히 시장의 물리적 크기가 작던 것 아닐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잡지는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SF 팬이라 해도 쏟아지는 소설과 앤솔러지를 다 읽을 수 없으니, 누군가 읽고 소개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실려 있는 중단편 중 딱히 흥미로운 소설은 없었지만 서평이 넉넉히 실린 것이 가장 반가웠다.

오랜만에 깔깔대며 읽은 책이다.

 

큐비즘 -> 추상 -> 액션 페인팅 -> 팝 아트 -> 개념 미술... 까지 발전한 대충 이 시점에서 현대미술이 '보는 것'을 넘어서서  '읽는 것', 원제 그대로 Painted Word 가 되었다는 주장을 하면서 미술가들과 그들의 후원자, 그리고 델포이의 신탁을 해석하듯 미술을 해석해내서 '말씀' 으로 창조해 내는 비평가들을 비평하는 책이다. 

 

나는 다른 데에서는 몰라도 최소한 미술에 있어서는 속담대로 '보는 것이 곧 아는 것' 이라고 믿어 왔다. ... 그러나 드디어 나는 깨달았다. 이 멍청이야, '보는 것이 아는 것' 이 아니고 '아는 것이 곧 보는 것' 이야! 왜냐하면 현대미술은 완전히 문예적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그림이나 다른 미술 작품들은 오직 문의를 예시하기 위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보헤미안으로서 그들은 상류사회의 살롱을 떠났지만 상류사회의 세계마저 떠난 것은 아니었다. 부르주아지로부터 떠난다면 화구를 챙기고 타히티 섬이나 아니면 최소한 (고갱의 첫 기착지였던) 브르타뉴라도 떠나야 한다. 그러나 고갱 이외에 누가 브르타뉴만큼이라도 갔는가? 아무도 없다. 나머지는 모두 몽마르트르나 몽파르나스 언덕 이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무슨 얘긴가? 샹젤리제로부터 이 마일 이상은 안 벗어났다는 얘기인 것이다. 미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신시내티에서도 필요한 윈저 뉴튼 물감을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화가들은 계속 뉴욕으로 몰려들고 있다. 
두 사람 (MoMA의 큐레이터) 이 53번가 미술관을 나서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 순간부터 아랫동네 '보호(BOHO)의 마을'의 레이더망은 그들의 출격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그들이 온다!' 그러면 접신술가의 우주 맥동처럼 로우어 맨해튼 일대에 심장이 뛰는 소리가 합창이 되어 일어났다. 
"나를 뽑아 줘요, 나를 뽑아 줘요. 나를 뽑아 줘요...." 아, 빌어먹을 윗동네!
마음속으로 알고 있는 것과 입으로 말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다만 누가 묻거든 절대로 그렇게 털어놓으면 안 돼!
오늘날 아방가르드 화가가 그의 후원자에게 줄 수 있는 독특한 현대적인 보상이 있다. 후원자는 배우자인 화가나 마찬가지로 자기도 부르주아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며, 자기가 중산층 '출신'이긴 하지만 더이상 그 세계 '안에' 있지는 않다는 느낌 ... 자기는 블레셋의 땅을 진군하는 선발부대에 끼인 동료 사병, 아니 최소한 부관이나 명예 게릴라쯤은 된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의 독특한 욕구이고 구원 (돈을 너무 많이 가졌다는 죄악으로부터의) 이며, 뉴욕이든 로마든 밀라노든 구미 전역에 걸쳐 부유한 사람들 가운데서 보이는 아주 일반적인 현상이다. ... 알았어? 난 '저들'과 다르단 말이야. 저 젊은 상공회의소 회원들, 저 금융회사의 회장들, 저 새파란 사장들, 돼지턱에 줄무늬 넥타이를 매고 굴 전문 음식점에서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어, 친구, 만나서 반갑네) 저 돈만 아는 뉴욕의 이교도 재벌들하고는 다르단 말야. 전위미술 작품은 다른 무엇보다도 돈으로부터 맘몬과 몰렉의 체취를 몰아내고 거기에 작업복, 스웨터, 구렛나룻, 그리고 보헤미아의 우아함을 지니는 망토와 월계수의 분위기를 대치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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