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첫 단편집이다. 이런 단편까지 출간되다니 한국 SF 팬덤이 어떤 집단인지 잘 보여준다 =_=

(힌트: 띠지의 추천한 사람을 보시오)

 

작가가 사실대로 자기가 여자라고 밝혔다면 <엄마가 왔다> 같은 단편은 처절하게 무시당했을 것이다.

<고통에 밝은> 은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현학적이다. 그런데 현학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을 동시에 구현한 몇 안되는 작품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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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읽으면서 음.. 그냥 그렇네... <100광년 일기>는 테드 창의 <우리가 해야 할 일> 에 대한 대답인 것 같고... <무한한 암살자> 이거는 쿼런틴에서 했던 이야기 아녀....? 그래도 <실버파이어> 는 좀 좋은데.. 팬데믹 이야기에 이상한 종교도 나오는 거보니 작년에 쓴건가...? 하고 있었는데

 

역자 후기 보니까 대부분 쿼런틴 전에 썼던 거고 실버파이어도 1995년 작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음. 2000년대 인기작들에게 굉장히 많은 영향을 줬다는 걸 깨달음.

 

책 뒤에 보니 허블에서 그렉 이건 2권 더 나오고 그렉 베어, 옥타비아 버틀러도 나온다는데 기대된다.

 

띠지에 김초엽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표현이 있는 걸 보니 매우 재미있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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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The Year's Best Science Fiction> 라는 제목으로 출간되는 종합 앤솔러지다. 2003년에 21세기 SF 도서관 이라는 미묘한 이름으로 2001년판이 출간되었고 그 이후로는 아무 소식이 없었는데, 갑자기 작년(2021년) 부터 매년 출간을 하고 있다. (2021년 판에 대한 짧은 리뷰는 여기에 있다) 영미권 SF 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따라 잡는 일이 쉬운게 아닌데, 이렇게 모아 놓은 앤솔러지를 출간해 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부디 이 시도가 계속되기를 바라며 몇 가지 기억에 남는 단편에 대해 짧은 감상을 써 본다.

 

<에어 바디>

영화 그녀Her 의 파키스탄 이민자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흔한 이야기지만, 그 배경 때문에 굉장한 반전이 펼쳐진다. (사실은 반전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반전이다)

 

<알약>

아무리 고도비만이라도 먹기만 하면 완벽한 몸을 가지는 알약이 있다면? 다만 아주 사소한 부작용이 있는데, 약을 먹은 사람 열 명 중 한명은 죽어버린다는 것이다. 이 알약은 판매 허가를 받을 수 있을까? 물론 될 것이다! 2021년에 읽은 단편 중 가장 인상적인 단편이었다. 다만 좋다고 하기는 어려운데, 흥미로운 초반부에 비해 결말 부분의 성애적 접근은 꽤나 통속적이고 한 천번은 읽은 듯한 내용이다.

 

<드론을 두드려 보습을 만들지니>

드론 보고 체게바라가 너 저항군이 되지 않을래? 하는 이야기

 

<GO. NOW. FIX.>

인공지능이 달린 베개가 비행기 사고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아주 행복하고 귀여운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도 계속 나와야 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엘리스테어 레이놀즈의 유머 감각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인간이란 무엇이지?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짓는 것은 무엇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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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출판된 SF 를 기억만 떠올리며 목록을 만드는 게 가능한 시절이 있었는데, 이렇게 따라잡지 못할 속도로 한국산 SF 앤솔러지가 계속 나온다니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사실 읽은지 너무 오래되어서 책 소개를 봐도 이산화의 무한루프를 다룬 단편 외에는 특별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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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대로 그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남자와 그를 이용해 명성과 권력을 얻기를 바라는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살기가 힘드니 좀 한가해졌으면 좋겠다- 이런 암시를 불어넣으니 수십년 전에 팬데믹으로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죽어나간 꿈을 꾸고 그게 현실이 되어버리는 식.

 

꿈꾸는 대로 세상을 바꾼다니 이건 장자 이야기잖아! 싶은데 사실 장자 이야기가 맞다. 애초에 책 제목인 <하늘의 물레> 부터가 장자에 나오는 자연의 균형이라는 뜻의 천균(天鈞) 이라는 단어를 '하늘의 물레' 로 오역한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소원을 빌 때는 조심해야 해' 부류의 이야기지만, 전통적 SF 의 트릭도 잘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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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이후로 읽은 심너울의 SF 장편소설이다. 어디선가 많이 본 이야기들을 잘 조합해서 어디선가 많이 본 이야기를 내놓았는데, 결론 부분이 꽤 마음에 들었다. 

 

- 스포 시작 - 

 

인류 사회를 지배하는 초인이 되어도 총알 한방이면 으악이라는 건 똑같다! 총알을 맞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엄청난 속도로 계산할 수 있지만 총알을 피하는 방법은 없다!

 

- 스포 끝 - 

 

그리고 듀나가 그리기 시작한 한국형 재벌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가 꽤 그럴듯하게 그려진다. 이 소재는 앞으로도 계속 쓰여질 것 같다.

<Happy SF>, <판타스틱>, <미래경> … SF 전문 정기간행물을 만들기 위한 그간의 노력은 항상 실패해 왔다. 이런저런 해석이 붙지만 진짜 이유는 단순히 시장의 물리적 크기가 작던 것 아닐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잡지는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SF 팬이라 해도 쏟아지는 소설과 앤솔러지를 다 읽을 수 없으니, 누군가 읽고 소개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실려 있는 중단편 중 딱히 흥미로운 소설은 없었지만 서평이 넉넉히 실린 것이 가장 반가웠다.

- New Yorker 에서 저자 인터뷰를 읽다가 흥미가 생겨서 위키백과에 소개된 시놉시스를 읽고 결국 kindle 로 전체를 읽었다.

- 국내에 아직 번역이 되지 않았으니 간단하게 내용을 요약해 보겠다. 내용 전체에 대한 스포일러니 읽으실 분은 뒤로 가세요.

- 소설 시작부터 인도에서 폭염으로 2천만명 이상이 사망한다. 이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는데, 결코 무리한 설정이 아니라는게 더 충격이다. 기온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온을 가리키는 건구온도와 수증기가 증발하는 표면의 온도를 가리키는 습구온도로 나뉘는데, 습구온도가 35도를 넘으면 인간은 체열을 발산할 수가 없어서 죽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구 온난화로 인해 습구온도가 35도 이상으로 올라가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지금은 2~3시간 정도만 지속되고 말지만 작중에 묘사된 사건처럼 냉방 시설과 전력 공급이 충분하지 않고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서 24시간 이상 그 수준의 폭염이 온다면 천만명 단위의 사망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 폭염에서 살아남았지만 평생 치유되지 않는 PTSD를 가지게 된 남자 프랭크 메이가 이 소설의 두번째 주인공이다.

- 파리 협정의 결과물로 아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미래 세대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래부> 가 만들어진다. 아일랜드 출신 미래부 장관 메리 머피는 탄소 배출을 적극적으로 막기 위해 전 세계의 중앙은행을 설득해서 <탄소 코인Carbon coin> 을 만들고, 해수면을 수 미터 높일 만큼의 탄소 연료를 캐지 않은 채로 가지고 있는 대가로 자원 부국들에게 탄소 코인을 지급한다. 또 지속 가능한 농업으로 표토에 탄소 고정을 하는 개개인에게도 탄소 고정량을 측정한 후 탄소 코인을 지급한다. 어차피 양적 완화를 할거면 지구를 살리기 위해 양적 완화를 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 지구를 구하기 위해 평화로운 방법만 쓰는 건 아니다. 폭염으로 수천만명이 사망한 인도인들은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라비아해 상공에 햇빛을 차단하는 이산화황 입자를 살포하고, 인도 출신 환경 테러리스트 집단인 <칼리의 아이들> 과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여러 무장 집단은 전 세계의 석유 석탄 재벌들을 암살하고, 트롤 어선을 침몰시키고, 화석 연료로 날아다니는 여객기 전체를 드론으로 공격해서 추락시키고, 러시아산 극초음미사일로 디젤 컨테이너선을 침몰시킨다. 이 극초음미사일 때문에 어떤 표적도 안전할 수 없게 되고, 전면전이 불가능해진다. 가장 흥미로운 건 드론을 이용해서 지구상 방목되는 소에게 무작위로 광우병 프리온을 주사하는 장면이었다.

- 남극과 그린란드에서는 과학자들이 빙하를 시추해서 빙하 아래에 고인 녹은 물을 퍼올린다. 이렇게 해서 빙하가 바다로 흘러가는 속도를 낮추고 해수면이 상승하는 시간을 번다.

- 이 와중에도 선진국의 대도시에는 10년 동안 비가 오지 않고, 로스 앤젤레스에는 집중 호우가 내려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는 등 크고 작은 자연 재해가 닥친다.

- 스페인 바스크 몬드라곤, 인도 케랄라 등에서 실현된 진보적 지역 경제-사회 공동체가 전 세계로 퍼진다. 기업 내 급여 격차를 최대 10배에서 20배로 제한하는 조치가 시행된다. 작가는 미 해군 대장의 급여가 사병의 10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 이상의 급여가 실질적으로 필요하냐고 묻는다.

- 주로 저위도 지역에서 온 난민들에게 2차 대전 직후 난민들에게 주어졌던 것과 유사한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특수 여권이 주어진다.

- 그 와중에 겸사겸사 탈중앙화 p2p SNS 같은 것도 만들고 금융 거래도 가능하게 해서 조세 도피처를 망하게 만든다.

- 미래부가 위치한 스위스 취리히와 알프스 산이 얼마나 아름답고 그곳의 겨울 날씨가 얼마나 험악한지에 대해 만연체로 이야기하는데 책의 약 1/7 이상이 소모된다.

 

- 소설의 각 챕터는 각각 다른 화자의 말을 전한다. 메리 머피와 그녀의 미래부 관료들, 그리고 프랭크 메이를 제외한 대부분은 무명의 등장 인물 또는 전지적 작가이다. 역사, 광자, 탄소 원자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전개하기도 한다.

-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이 책 속의 인류는 ““매 순간 가장 최고의 정치적 결단”을 내리며, 그 모습이 오히려 절망적인 현실을 더욱 상기시킨다고 지적한다. 꽤나 동감하는 바이다.

 

- 작가는 끝까지 원자력을 언급하지 않는다. 현재 기술 기반으로 전기 기반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실질적으로 유일한 방법이 원자력이라는 걸 생각하면 꽤나 비겁한 선택이다. 작가의 개인적 신념이 반영된 것일까? 아니면 독자층을 고려한 것일까? 인도가 탈탄소 선두에 선다면 상대적으로 안전한 토륨 원자력 발전을 언급해야 하지 않았을까? 핵융합은 2050년까지도 도달 불가능한 목표인 것일까?

- 유사-공산주의가 세계를 정복해서 기후 위기를 이겨내려 노력하는 이 새빨간 소설을 미국 보수 우파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지만 유의미한 결과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진보적인 영미 미디어에서는 엄청난 각광을 받았는데 한국 언론에서는 기사 하나 정도만 검색된다.

 

- 주로 출퇴근길에 영어로 읽는데 대충 한달이 걸렸다. 어쩔 수 없이 정독을 하게 되고 생각할 거리도 많아진 것 같다. 그 시간에 한국어 책을 읽었으면 열 권도 넘게 읽었겠다만 읽을만한 책 열 권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 어쨌든 2022년 1분기 최고의 책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제 2분기에 SFnal 이 나오기를 기다려야겠군.

- 마거릿 애트우드 여사는 <오릭스와 크레이크> 를 쓰고 아직 못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던 듯 하다. 가필의 가필을 이렇게까지 쓸 이유가 있었을까?
- 전작의 주인공들의 사연이 계속 다른 관점을 통해 반복된다.
- (스포일러)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 낸 신인류들이 1부에서는 좀 포스트휴먼답게 묘사되었는데, 2부와 3부에서는 그냥 고귀한 야만인이다. 추상적 사고를 하지 못한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책도 씀. 이 친구들에 비하면 야노마미족이 더 포스트 휴먼에 가깝다.
- <시녀 이야기> 와 <증언들> 에서도 그러더니, 이 책들에서도 애트우드 여사는 복음주의 개신교에 대한 애증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웹진 거울과 다양한 앤솔러지를 통해 수록작 대부분을 이미 읽은 것 김보영이라는 작가가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를 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다. 

 

<땅 밑에> 는 르 귄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표제작인 <다섯 번째 감각> 은 커트 보네거트의 <해리슨 버거론> 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아인 랜드식 거만을 버리니 훨씬좋다. <우수한 유전자> 는 SFnal 2021에 실린 N. K. 제미신의 <비상용 피부> 와 아시모프의 <강철 도시> 가 섞인 듯한 단편이다. 수록작 중 처음 읽어본 <스크립터> 가 가장 좋았다. 심너울의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와 유사한 듯 하면서도 더 고상한 접근법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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